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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2 가능의 삶 (막 9:14-29)
작성일 :  2020-11-19 12:57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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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오늘 받은 본문 중에서 불가능과 가능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모르는 일단의 무리들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실로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서 허덕이는 실존임이 분명합니다.

 

  一. 불가능한 일에 속수무책인 인간

  그것은 간질병을 앓고 있는 한 아이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산상에 계셨고 산 밑에는 아홉 제자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큰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제자들이 그 병을 고쳐주지 못함에 대하여 크게 변론했지만 모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라는 체념과 안된다라는 절망어린 소란스러움만 난무할 뿐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삶의 현장입니다.

 

  二. 예수님의 가능을 봅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이 장면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리 중에 하나로부터 이 기막힌 사건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신앙의 세대를 탄식했습니다(19).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아이 안에 있던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셨습니다. 그 즉시 아이의 병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모두 속수무책이었던 문제는 해결나고 말았습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불가능은 없었습니다. 그분의 하신 말씀 중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산더미 같은 죄의 문제도 깨끗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사망 문제까지 해결해 주신 분입니다. 주님의 한 번 명하심에(25), 결과 그 아이는 고통과 죽음의 불가능에 삶에서 다시 살아나는 가능의 삶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속수무책의 불가능의 인생 세계에 가능의 세계가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가능의 인생들에게 예수는 소망이요 구세주가 된 것입니다.

 

  三. 우리가 받은 가능의 삶이 있습니다.

  변화산 아래는 다시 고요해 졌습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우리는 어찌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종용히 예수께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능의 법칙입니다. 1. 첫째는 너희 믿음이라고 했습니다(17:20). 이는 산더미 같은 불가능의 문제라도 믿음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겨자씨만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한 겨자씨만한 믿음이란 생명이 있는 믿음, 진실한 믿음, 의심하지 않는 믿음, 외식하지 않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이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그 어머니를 완전히 신뢰하는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아이는 설명할 줄 모르나 그저 어머니만을 믿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머니에게 있는 모든 가능, 곧 사랑과 축복의 가능이 모조리 아이에게 쏟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저 아이에게 행복인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23). 그러자 곧 아이의 아비가 소리 질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24)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귀신과 질병에 빼앗긴 아들을 도로 찾아가는 가능의 행복을 받았습니다. 믿음! 한 겨자씨만한 믿음이 태산과 같은 불가능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4,7). 주님 안에 거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이 곧 주와 그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지식이 아니고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경제()가 아니고 믿음, 정치가 아니고 믿음, 문화와 예술이 아니고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심치 않고 그 말씀을 믿을 때 무슨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곧 가능해진다는 말씀입니다. 2. 둘째로 너희의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2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다(3:15). 예수께로부터 파송 받았던 70인 전도대들은 귀신이 항복하고 쫓겨 가는 경험도 했습니다(10:17-20).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은 기도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려 할 때 그 결과는 언제나 소란이요 실망이요 수치를 당하는 곤란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의 일을 하려는 자들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농락거리가 됩니다. 주의 능력과 말씀을 믿는 믿음과 기도, 이 기도와 믿음은 항상 동행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과 기도 외에는 인생 여정에 태산 같은 불가능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은 산더미 같은 현실 앞에서 늘 불가능의 감각만을 가지기 쉽습니다. 할 수 없다, 안 된다 하면서 절망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바로 이것이 실패의 원인입니다. 불가능의 감각! 이것은 불신앙입니다. 이런 불신앙이 자리 잡은 마음에서 가능의 기도가 나올 수 없습니다. 현재보다 1000배로 나갈 수 있는 축복의 비결은 예수에 대한, 말씀에 대한 100%, 1000% 가능의 감각을 가진 것입니다 신앙이란 진리(예수)에 대한 바른 인식입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바른 파악이 기본 능력입니다. 예수만이 인류가 만난 태산더미 같은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인식이고 파악입니다. 여기에 믿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터집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하는 가능의 탈출구를 붙잡게 됩니다. 따라서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1000배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4:13). 현재보다 1000배나 더한 가능은 언제든지 상존합니다. 그것은 모든 가능에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중보기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계속되기 때문입니다(13: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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